[서울청년 뉴스레터][우리의 시선 : 칼럼 1] 분노로 끝나지 않기 위한 우리들의 방식

2020-04-21
조회수 798

이한 <분노로 끝나지 않기 위한 우리들의 방식>


‘이 시국’ 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사회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나 행동 등을 비판하기 위해 ‘이 시국에…’라고 운을 띄우는 것에서 유래된 인터넷 유행어다. 농담처럼 사용하던 이 유행어가 최근 코로나 신종 바이러스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 이후 조금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이 시국에 유흥업소?’, ‘이 시국에 벚꽃놀이?’ 등 주로 코로나19의 전파 위험에도 경각심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 되곤 한다. 이러한 표현이 자주 사용되고 또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것은 코로나19라는 비상 시국에 시민의 역할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 믿는다. ‘나 하나 쯤이야’가 아니라 ‘나 부터’라는 다소 고리타분한 이 말의 중요성을 이처럼 잘 설명하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또 있을까. 공동체를 위해, 특히 바이러스, 질병에 취약한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조금 불편하고 어렵더라도 시민 한 명, 한 명이 일상에서부터 청결과 방역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을 뼈 저리게 깨닫고 실천하고 있다. 이 시국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긍정적인 요소를 애써 찾자면 손 씻기 문화 확산과 ‘공동체와 개인’을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이 시국’이 있다. 바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비롯한 사이버 성폭력 사태다.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를 통해 수많은 남성들이 불법촬영물, 딥페이크, 성착취물 등을 유통하고 구입, 시청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생산하는 데 다양하게 가담한 사실이 밝혀졌다. 21세기에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경악하고 슬퍼하며 또 분노했다. 자그만치 5백만 명이 청와대 청원에 참여했다. 그런데, 이 시국에도 여전히, 가해자 숫자가 과장되었다고 궤변을 늘어놓거나 치기어린 호기심이라 이야기하거나, 또는 일부 악마 같은 개인의 문제로 매도하여 사건을 축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전에 웹하드 카르텔이 있었다. 한 개의 웹하드에 피해촬영물이 평균  3만 건, 이런 웹하드가 국내에만 50여개가 있었다.*  웹하드 업체는 피해촬영물을 유통하고 소비하고 제작하는 모든 과정에 개입했다. 수많은 남성들의 돈으로 카르텔은 유지됐다. 비슷한 시기 버닝썬 사건이 있었다. 여러 남성 연예인들의 성폭력, 여성혐오 발언이 드러났고 연이어 피해 여성을 추측하는 2차가해, 사건을 사소화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각종 단톡방 성희롱이 있었다. 소라넷이 있었으며 ‘#00계_내_성폭력’, 미투운동으로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이 드러났다. 삐까뻔쩍한 빌딩 사이 성매매 업소가 즐비했고 이를 대수롭지 않게 이용하는 남성들이 있었다. 여성을 ‘00녀’라고 부르며 희롱하고 혐오하는 인터넷 문화가 있었다. 무수한 성폭력, 성차별 사건은 유야무야되기 일쑤였고, 가해자를 잡더라도 미혼이라, 기혼이라, 제정신이 아니라, 반성하여, 앞길이 창창하여, 환경이 불우하여 등 각종 이유를 달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날 때가 많았다. 언제나, 이것은 일부의 문제라고 말하는 남성들과, 남자라면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는 남성들, 그리고 침묵하는 남성들이 있었다. 

만연한 여성혐오와 성차별, 성폭력이 있었다. 

재난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일상의 모습으로 늘 곁에 있었다. 



그래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은 비단 26만 명만의 문제가 아니다. 치기어린 호기심도, 실수도, 일탈도 아니다. 진공에서 태어나는 악마는 없다. 지극히 만연하여 문제인줄도 모르고 살았던 ‘남성연대’, ‘남성문화’의 문제다. 지금까지 우리는 어떤 세상에서 살았는가? 어떤 남성성을 추구하고 숭배했으며, 어떻게 여성혐오를 이어가고 젠더권력 유지에 기여했는가. 

질문을 다시해야 한다. 이 사건에 분노한다면,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 분노의 화살을 개인에게만 쏟을 것이 아니라,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억울해할 것이 아니라, 침묵할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를 추적조사하듯, 우리사회의 성차별적이고 여성혐오적인 문화가 어떻게 이런 참담한 비극을 만들었는지 개인의 일상에서부터 꼼꼼하고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 



작년 한 해 가장 뜨거웠던 책 중 하나인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우리사회의 차별과 혐오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세심하게 보여주었다.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선량하고 싶은 마음만으로는 차별과 혐오를 멈출 수 없다. 무의식적이고 의도하지 않더라도 사회구조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지 않으면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기여하게 된다.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했던 행동을 성찰하고 습관과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을 바라지만, 선량한 마음만으로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불평등한 세상에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익숙한 질서 너머의 세상을 상상해야 한다. -중략-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우리가 함께 모여 결의 할 때 평등은 지금 바로 여기에서 이루어진다.
_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2019, 205쪽 **


전염병이라는 재난 앞에, 개인은 위생에 신경쓰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한다. 동시에 사회적 차원에서는 방역과 구호, 세심한 지원, 국가 공조 등 다방면의 노력을 기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백신이 개발되어 재난이 일단락 될 때까지 모두의 협조와 노력이 필요하다. 


일상의 재난 앞에 변화를 위해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 우리 앞에 드러나기까지, 수많은 활동가들이 분노와 절망을 이기며 피해자와 연대하고 분투했다. 갖은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고 공론화를 위해 애쓴 언론인이 있었고 내 일처럼 분노하고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고자 애타고 간절한 마음으로 청와대 청원에 한 표를 더한 시민들이 있었다. 


이 시국은 우리에게 세상이 결코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공동체에 대한 애정과 믿음에 더해 부단히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개인의 실천이 이 사건을 수면으로 드러내 범죄를 멈추게 했고 주요 범인의 일부를 카메라 앞에 세웠다.위기와 재난의 이 시국에 분노와 절망을 넘어 지치지 않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방식이 있다면, 피해자가 일상을 회복하고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성차별과 성폭력, 혐오의 고리를 끊는 일이라고 믿는다. 아직 나아가야할 길이 멀다. 이 시국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2019

**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2019, 189쪽